이 남자는 방금 전만 해도 자기 집의 거실에 서 있었지만, 이제 사방에 보이는 풍경은 화장실 바닥같은 회색 타일로 뒤덮여있습니다. 구석의 허공에서 복셀이 쏟아져내립니다. 천장이 뻥 뚫린 방은 픽셀 모양으로 각진 새들이 날아다니는 푸른 하늘이 그대로 보입니다. 손에 든 도구로는 허공에 직사각형 프레임을 그려낼 수도 있군요. 프레임을 대강 15m 정도까지 늘린 다음 바이브(Vive) 컨트롤러의 트리거를 풀자, 즉시 새로운 공간으로 다시 이동합니다.
이제 발 밑에는 마인크래프트 배경같은 녹색 벌판이 펼쳐져 있습니다. 저 멀리 꼭대기에 눈 덮인 산맥이 보이고, 그 사이로는 강물이 넘쳐 흐르고 있군요. 남자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꼭대기로 순간이동 한 다음, 저 멀리 떨어진 화장실을 다시 바라봅니다. 이 순수한 자연속에 유일하게 남은 도시적 풍경이라 하겠습니다. 남자는 팔에 달린 팔레트에서 색깔을 하나 고른 다음, 허공에 파랗게 팔을 휘두릅니다. 파란색은 즉각 수천개의 미세한 복셀로 이루어진 오브젝트가 됩니다. 그리고 이젠 몸을 더더욱 작게 만들어,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화소 하나의 크기까지 체구를 줄여봅니다. 이제 남자는 저 오브젝트 속을 휘젓고 다니며, 가장 자세한 수준의 묘사까지 감상할 수 있게 됩니다.
스컬프터 VR(Sculptr VR)의 플레이어가 사용하는 도구는 테라리아나 심즈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포토샵같은 프로페셔널 작업 소프트웨어가 더 적합할 겁니다. 애초에 이 게임의 개발자인 네이선 로우(Nathan Rowe)는 애초부터 그런 게임들을 목표로 하지도 않았습니다. 목표는 다른 샌드박스형 게임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만드는 것이었죠.
“마인크래프트는 한계가 명확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어요. 인터페이스 자체가 너무 직관적이고 단순하니까요.” 로우의 말입니다. “3D 작업을 겨우 마우스랑 키보드로 처리하기는 버겁습니다. 결국 누구나 구현해낼 수 있는 한계에 부딪히게 되지만, 그 확장성 하나는 이런 거대한 세계를 만들 수 있는 수준이긴 합니다.”
스컬프터에서는 마우스와 키보드 대신 바이브의 룸-앰블링 VR 키트를 사용합니다. 손만 정확히 움직여줘도 6단계의 기능들을 마음껏 쓸 수 있는 것이죠. 가상 세계에 블록 하나 떨어뜨리는 일이 갑자기 우스울 정도로 간단해지는 겁니다.
“마인크래프트는 이미 존재하는 세계 속에 게이머를 구현해놓습니다. 왜냐하면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처음부터 만들 수는 없으니까요. 그랬다간 평생 걸려도 못 만들 걸요.” 로우는 지적합니다. “저는 어지간하면 기본 세계는 제공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어차피 필요 없거든요. 스컬프터VR에서는 새로운 세상 전체를 하나 만들어내는 일이 굉장히 간단해요. 크기 조절 기능 덕에 자그마한 세상 하나를 만든 뒤에 몸체를 줄여버린 다음, 그 사이를 마음 내키는 대로 돌아다닐 수 있죠.”
스컬프터VR은 본래 유니티 엔진으로 개발되어 시제품까지 만들어졌지만, C++ 의 백엔드 기능을 활용하여 90 fps의 가상 세계를 구현해내기 위해 언리얼 엔진 4로 개발 환경을 교체하였습니다. 로우는 자신의 프로젝트를 “조각 어플리케이션” 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손만 대충 흔들어도 3D 오브젝트를 구현해낼 수 있는 특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로우는 본래 3D 프린터용의 소프트웨어 설계자로 활동했으며, 스컬프터 VR에서 만들어낸 오브젝트들도 게임 밖으로 익스포트 시켜 3D 그래픽의 표준 .OBJ 포맷으로 저장할 수 있습니다.
스컬프터VR은 사실 굉장한 도구입니다. 이미 형형색색의 구체들과 붓, 그리고 물리 파티클을 활용해 생각한 바를 그대로 그려낼 수 있는 기능이 구현되어 있습니다. 잘못 그린 것을 지우고 싶다면 그냥 손에서 자그마한 지우개들을 쏘아내면 됩니다. 하지만 로우는 이 소프트웨어를 게임으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사람들은 이걸로 그냥 세상을 만들고 있고, 저도 그냥 그렇게 갖고 놀도록 부추겼습니다.” 로우의 말입니다. “그래서 언젠가 게임 기능까지 추가하게 되면, 여러분은 가내수공업으로 직접 제작한 요상한 세계 속에서 온갖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되겠죠.”
로우는 아예 자신이 구상해 놓은 게임 모드들을 벽보에 따로 모아놓았습니다. 하나하나가 흥미진진한 아이디어들입니다. 주된 컨셉은 아마도 모험이 될 테죠. 성능이 시원찮은 순간이동기를 가지고 뭔가를 만들어내는 모드가 될 겁니다. 그리고 웜즈도요.
“수많은 사람들이 3D 웜즈를 만들다 실패했죠. 3D 입력이 아직 성능이 좋질 않아서요.” 로우 씨의 말입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성능 좋은 3D 입력 방식을 구현해냈고, 좀 더 파괴적인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데이터도 만들었습니다. 아마 친구 너댓명이 모여서 다같이 턴 방식으로 게임을 하면 굉장히 재미있을 거예요. 각각 2분씩 준 다음 헤드셋을 씌워주고, 자기 맘대로 미사일이나 수류탄을 쏴대게 하는 겁니다. 온라인에서 만난 낯선 이들에게 분화구로 뒤덮인 참상을 [남겨주는] 거죠.”
아직 스컬프터VR은 구체적인 플레이 방식도 개발되지 않았지만, 이미 가지고 놀 것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한테도 스케일러를 드려보았는데, 어떤 여성분은 집 안에 부엌을 만드시더라구요.” 회상했습니다. “사물들의 크기를 키우는 것은 끝끝내 거절하시면서 테이블 위에 바짝 엎드려서 각종 식기들을 만드는 작업을 하셨어요. 그렇게 찻잔과 주전자를 만들고 난 뒤에야 몸을 줄여서 찻잔들 사이에 서시더니, 얼굴에 함박웃음을 띄우시는 거예요. 아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감명깊게 읽으셨나 봅니다.”
스컬프트VR은 지금 스팀에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에디터 주석: PCGamesN에서는 환상적인 언리얼 엔진 게임을 선정하여, 해당 게임의 개발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Making It in Unreal" 시리즈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에픽 본사는 기사 제작에 어떤 영향력도 행사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