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배경지식을 먼저 드리겠습니다. 스네이크 패스(Snake Pass)는 영국 북부의 두 대도시인 맨체스터와 셰필드를 잇는 아주 위험한 산악 도로 구간을 의미합니다. 특히 위험한 커브 구간과 꼭대기가 보이지 않을 정도의 고도는 거의 레이싱 게임 Forza의 일본 스테이지에나 비견할 만합니다.
또한 스네이크 패스(Snake Pass)는 이번에 새로 개발된 3D 플랫폼 게임 이름이기도 합니다. 이따금 Forza 시리즈의 개발에 참여하는 스모 디지털(Sumo Digital)에 의해 개발되었죠. 이런 지식들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사실을 알려줍니다:
1. 이 플랫폼 게임은 뱀에 관한 것이다.
2. 스모 개발자들은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이 언어유희를 알아듣든 말든 신경을 쓰지 않는다.
3. 이 게임은 운전 게임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뱀을 움직여 고전게임 Banjo-Kazooie를 연상시키는 아찔한 높이의 스테이지들을 클리어해나가는 매우 기묘한 게임입니다만, 어쨌든 운전 게임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오른쪽 트리거를 당기면 뱀이 전진합니다. 왼쪽 스틱을 좌우로 움직이면 몸을 이리저리 꼬면서 나아가 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A 버튼을 누르면 꼭 뱀 곡예사들의 피리소리를 들은 것처럼 머리를 바짝 들 수 있습니다.
마지막 기능이 중요한 이유는, 플레이어의 목적지가 높은 고지에 있기 때문입니다. 스네이크 패스의 각 스테이지는 가파른 경사와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루어진 장애물 코스로 이루어져 있으며, 플레이어는 튀어나와있는 대나무 장대를 몸으로 휘감아 위로 올라가며 파란 구슬(blue orbs)들을 모으거나, 공중에 둥둥 떠 있는 아즈텍 문양을 얻어 다음 스테이지로 가는 차원문을 열어야 합니다.
플레이어는 처음에 게임 조작에 상당히 애를 먹을 것입니다. 또 다른 AAA급 영국 게임 개발사에서 내놓은 게임 Grow Home처럼, 플레이어는 조작법을 가지고 무진 애를 쓸테지만 캐릭터는 플레이어의 생각만큼 잘 움직여주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플레이어는 점점 중력과 가속 사이의 미묘한 상충에 익숙해집니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여기저기 나열해 있는 막대기들에 목과 몸을 배배꼬아가면서, 기어이 고지까지 올라가는 데 성공했단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진짜 퍼즐은 캐릭터를 어떻게 움직이느냐, 그 자체에 있습니다.” 디자이너 Barry Soilleux는 말합니다. “그래서 게임 속에 적 캐릭터를 단 하나도 넣지 않은 것입니다. 저희는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하다가도 잠시 멈추고 ‘저기는 어떻게 올라가야 하지?’라고 생각하길 바랐어요.”
스테이크 패스는 전통적인 플랫폼 게임과는 굉장히 다른 게임이지만, 그 차가운 파충류의 핏줄에는 엄연히 플랫폼 게임이라는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스네이크 패스의 제작자 셉 리세(Seb Liese)는 전직 생물학 선생님이자 LittleBigPlanet 게임 모드 계의 권위자로, 스모 사와 함께 물리스러운 플랫폼 게임들을 만들기 위해 네덜란드에서 건너왔습니다.
LittleBigPlanet 3의 개발을 마무리한 다음, 리세는 차기 프로젝트인 Crackdown의 신작을 개발할 언리얼 엔진 4에 익숙해져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리세는 언리얼 엔진의 블루프린트 스크립팅 툴을 사용해, 플레이어가 건드리고 지나가면 이리저리 흔들리는 밧줄을 하나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밧줄을 천장에 매달아두는 것을 잊어버리는 바람에, 시험삼아 실행해 보았을 때 리세가 본 것은 바닥에 툭 떨어져 정말 예쁘게 꼬이는 밧줄이었습니다.
“그런 종류의 모션은 전혀 본 적이 없었어요.” 리세는 회상했습니다. “과연 제가 저런 움직임을 일부러 조종해서 만들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죠.”
3, 4일정도가 지나자 리세는 이제 어지럽게 꿈틀거리는, 살아있는 밧줄을 만들어냈습니다. 리세는 이것을 직장에 가져가 동료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게 대략 1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이후 스네이크 패스는 사내에서 주최된 자체 게임 잼에서 우승을 했습니다. 덕분에 제작자 3명이 만지면서 한 달쯤 후에 스팀에나 출시할까 생각하고 있던 게임의 스케일은, 이내 20명의 인원들이 달라붙어 아직까지도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주력 프로젝트로 탈바꿈했습니다.
살아있는 밧줄은 이제 뱀 누들(Noodle)이 되었습니다. 리세는 뱀을 만들어낸 장본인으로서, 그 움직임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살짝 징그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팀원들은 그 징그러운 움직임을 90년대 최고의 플랫폼 게임들을 연상시키는 귀여운 미학으로 상쇄했습니다.
게임 디자이너들은 가끔씩 명작 플랫폼 게임의 ‘느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슈퍼 마리오를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만들어준 변수들의 집합 말이죠. 바로 그 지점에 도달하는 일이란 반은 과학이되, 반은 마술입니다. 그래서 한동안은 아무도 감히 누들에 손을 댈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요 뱀은 한동안 이런 블랙박스였어요.” 리세의 말입니다. “블랙 박스의 움직임 테스트를 통해서 중력과 마찰 사이에서 균형잡힌 행동들이나, 몸 전체 중에 어느 정도의 비율이 물건에 닿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모든 변수들을 한데 모았다 다시 나누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마법의 숫자로 다시 곱해서 분석을 했습니다.”
이제 제작팀에는 뱀의 움직임을 완전히 이해하는 코딩 담당이 최소한 3명은 있습니다. 하지만 코딩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스크립트만 사용해서 이런 움직임을 만들어냈다는 점은 여전히 놀라운 일입니다.
레벨 디자인 역시 대체 어떻게 해냈는지 수수께끼일 따름입니다. 전통적인 플랫폼 게임의 경우, 개발자들은 자신이 만든 플랫폼의 한계를 충분히 예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소닉의 점프 높이같은 것이 있죠. 하지만 스모의 경우는 정반대로 뱀의 물리적 움직임에 아주 관대하게 대처했습니다.
“첫 수백시간의 테스트 플레이는 아주 작은 방 안에서 이루어졌는데, 과연 뱀이 어떤 장애물들을 극복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온갖 물건들을 떨어뜨려 보았죠.” 리세는 회상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정신나간 물건들을 떨어뜨리기 시작했어요.”
스모가 디자인한 모든 스테이지들은 다시 3명의 플레이 테스터들이 자신들의 컴퓨터로 게임을 테스트해보았습니다. 결과물은 고전 게임의 주인공 용 Spyro the Dragon이 Dishonored를 느긋하게 플레이하는 듯한 양상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주인공 뱀이 아무 곳이나 막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려고 무진 애를 써야 했습니다.” 리세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그냥 이 미끈미끈한 친구가 어디든 갈 수 있단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죠.”
스네이크 패스에는 이름 말고도 또 다른 비밀이 숨어있습니다. 리세는 누들을 만들 때 사용한 오브젝트들의 실제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할 생각을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알고 보니 누들은 근 30미터에 가까운 거대 뱀이었습니다. 스테이지는 모두 거인들의 놀이터였고, 이런 거대한 배경과 조화를 이루는 괴물 새들이 날아와 누들을 도와줍니다. 알고 보면 전혀 귀엽지 않은 셈이죠.
에디터 주석: PCGamesN에서는 언리얼 엔진을 기반으로 제작된 환상적인 게임을 선정하여, 해당 게임의 개발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Making It in Unreal" 시리즈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에픽 본사는 기사 작성에 어떤 영향력도 행사하지 않습니다.